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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묵상

Title신년특별새벽집회 넷째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라"2020-01-16 15:04:43
Writer Level 10

2020 신년특별새벽집회 넷째 날 시편 123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라

 

 

성전에 올라가는 네 번째 노래에서 시인은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특히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과 장로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순례자가 성전에 오르는 유일한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123편에서는 유독 “눈”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내가 눈을 들어”(1), “눈 같이”(2a), “눈 같이”(2b), “우리의 눈이”(2c) 이렇게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사실 “눈”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눈에 달려 있고, 어디로 가느냐 도 눈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롯은 눈을 들어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그리로 갔지만 멸망의 불 속에서 가까스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야 말로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롯의 눈은 자신의 야망을 가리키지만 아브라함의 눈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 본 것입니다. 같은 눈이지만 완전히 다른 눈이 된 것입니다.

 

 

이제 시인이 성전에 올라서 행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오직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16:9a는 “여호와의 눈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자기를 향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23편의 순례자의 눈과 역대하 16장의 하나님의 눈이 마주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눈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눈은 사자처럼 가련한 자를 엿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며 잡아 끌어 당겨 잡는다고 했습니다.(시편10:8,9) 얼마나 악한 눈입니까? 그러나 성도의 눈은 다릅니다. 달라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했습니까?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2)라고 했습니다. 마치 종에게는 주인의 손을 통해 자비가 임하듯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간절함으로 하나님만 향하는 자를 어떻게 하나님이 외면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순례자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22편에서는 “평안”을 구합니다. 그리고 123편에서는 “은혜”를 구합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은혜”(Peace and Grace)입니다. 그래서 순례자는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2b)라고 합니다. 3a절도 보세요.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세 번이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직 은혜만이 절실한 것입니다.

 

 

그러면 순례자와 그 공동체에게 왜 은혜가 절실합니까? 지금 그들에게는 “심한 멸시”와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수 많은 멸시와 조롱과 폭언을 당하는 순례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곧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상교회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내리는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가 하늘로부터 흘러 넘치면 세상의 넘실거리던 멸시와 조롱과 폭거가 다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갈망하는 성도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평안 위에 평안을 한량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아멘.(*)